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궈전 사건 (문단 편집) === 우궈전 외화 사건 === 1954년 1월, 대만의 언론들은 일제히 우궈전이 거액의 외화를 훔쳤다고 공격하였다. 이를 알게 된 우궈전은 1월 15일, 상술한 바와 같이 국민당 중앙당부 비서장 장기균에게 편지를 보내 항의했다. ||나는 멀리 국외에서 갑자기 여러 통로를 통하여 내가 거액의 외환을 사취하였다는 소식과 아울러 총통부 비서장 왕세걸의 사직과 그것과 관련이 있다는 말 등을 듣고 있소. 나를 조사해 보면 이번에 미국으로 오는데 이미 행정원 [[천청]] 원장의 비준을 얻었고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모든 대만 돈을 대만 은행에서 5천 달러로 바꾸어 여비에 썼으며, 그 외에 정부 혹은 정부 내의 어떠한 사람이 공금을 비준한 적이 없을 뿐더러, 이 부분에 대해 어떤 부탁도 한 적도 없음을 알 것이오. 더욱이 왕세걸과 미국에 가는 비용의 문제에 대해서는 얘기를 나눈 적이 없소.|| 장기균은 이 편지를 우궈전의 아버지인 오경명과 총통부에 보냈다. [[장제스]]는 우궈전의 편지를 다시 한번 잘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2월 7일에야 신문에 등재하는 것을 허락했다. 1954년 1월 25일, 워싱턴의 화교신문 <민기일보>는 우궈전의 귀국을 촉구하며 우궈전이 대만으로 돌아가 관련된 문제를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. 이에 우궈전은 1월 27일, 민기일보에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항의했다. ||[[우궈전|정]]의 애국은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. 정이 어찌 한 개인 혹은 한 집안의 일을 생각하겠는가. 그러나 옛말에 이르기를 일은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. 또한 말하길, 합당한 것은 남아 있고 합당하지 않은 것은 없어진다고도 했다. 또한 충신이 나라를 떠나면 그 이름은 깨끗하지 않다고 했다. 정은 귀 신문사에 나를 너무 궁지에 몰지 않기를 간곡히 바란다. 그렇지 않으면, '''부득불 원하지 않는 말을 해야 될 것이기 때문이다.'''||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